처음에는 논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방법론을 배우려면 좋은 논문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건 맞다. 논문은 가장 빠르게 새로운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어떤 편향이 주목받는지, 어떤 분석법이 더 자주 등장하는지, 연구자들이 어디에서 막히는지를 가장 먼저 드러내는 건 늘 논문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이상하게도 다시 돌아가게 되는 문서는 따로 있었다. FDA, EMA, PMDA 같은 규제기관 문서들이었다. 처음 읽을 때는 다소 건조하고, 표현도 조심스럽고, 논문처럼 흥미롭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무엇이 실무에서 중요해지는지를 보면, 오히려 이런 문서들이 더 오래 남는다.

논문은 늘 빠르고 자극적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고, 새로운 데이터가 있고, 새로운 결과가 있다. 그래서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는 논문을 더 많이 읽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그렇게 해왔다. 좋은 리뷰 논문과 methods paper를 읽다 보면 세상이 어디로 움직이는지가 빨리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연구 질문을 쓰고, 프로토콜을 만들고, 결과를 해석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나중에 다시 펼치게 되는 문서는 이상하게도 규제기관 문서였다. 논문은 문제를 던져주지만, 규제기관 문서는 "그래서 너는 무엇을 어느 수준으로 설명해야 하는가"를 남긴다. 실무에서는 이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작은 표현 하나가 연구 설계를 바꾼다

규제기관 문서는 대개 강한 선언으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조심스럽게 범위를 정하고, 허용 가능한 설계의 조건을 넓히거나 좁히고, data relevance와 reliability를 반복해서 묻는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문장 하나가 들어가고 빠지는 것만으로 연구자가 준비해야 하는 것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특정 문서가 non-interventional study를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하면, 그건 단순한 표현 추가가 아니다. 이제부터는 연구자가 설계의 정당성을 더 명시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또 data quality에 대한 표현이 강화되면, 단순히 데이터가 많다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해진다.

실제로 규제기관 문서는 강한 주장 대신 조건을 붙인다. "can", "may", "should consider" 같은 표현을 반복하면서도, 그 문장이 놓이는 위치와 맥락이 기준을 만든다. 어떤 문서는 comparator 선택을 노골적으로 길게 쓰지 않더라도, data relevance와 reliability를 반복해서 강조함으로써 사실상 "좋은 비교와 좋은 데이터 정의 없이는 설득하기 어렵다"는 메시지를 준다.

이런 변화를 놓치면 실무에서 늦어진다. 논문은 이미 한참 앞선 토론을 하고 있는데, 실제 제출과 해석의 언어는 규제기관 문서가 다시 정리해 준다. 그래서 가이드라인의 작은 표현 변화가 논문 한 편보다 더 오래 머릿속에 남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Watch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최신 문서 수집은 단순한 뉴스 모음과 달라야 한다고 느꼈다. 중요한 것은 문서가 나왔다는 사실보다, 어디가 바뀌었고 무엇을 먼저 봐야 하는지를 짚어주는 일이다. 사실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긴 가이드라인 전체보다, 이번 업데이트에서 실무적으로 중요한 두세 문장이 무엇인지 아는 쪽이 훨씬 도움이 된다.

아마 내가 만들고 싶은 Watch의 형태도 여기서 나온 것 같다. 최신 문서를 모아두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번에는 이 문서를 먼저 보라"거나 "이 변화는 comparator 설명을 더 요구하는 신호다" 같은 메모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문서가 데이터가 아니라 판단 기준으로 남는다.

그래서 최신 문서 수집은 단순한 링크 모음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됐다. 중요한 건 문서가 새로 나왔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문서가 어떤 질문을 더 엄격하게 만들었는지, 어떤 표현이 앞으로 연구 설계를 바꾸게 할지를 짚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 업데이트에서 target trial emulation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time zero와 treatment assignment의 정합성을 더 강하게 요구하는 표현이 들어갔다면 실무적으로는 이미 큰 변화다. 그런 포인트를 먼저 메모하고 싶다. 아마 이 사이트의 Watch도 결국은 "새 문서 소식"보다 "이번엔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를 남기는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내가 쌓고 싶은 것은 판단의 흔적이다

논문은 트렌드를 보여주고, 규제기관 문서는 기준을 남긴다. 둘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 아카이브는 둘을 함께 보려고 한다. 논문은 새로운 문제를 던지고, 규제기관 문서는 그 문제를 실제 실무의 언어로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계속 문서를 읽고 글을 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최신 정보 자체보다, 그 정보가 앞으로 무엇을 요구할지를 조금 더 빨리 알아차리고 싶어서. 그리고 그 흔적을 잊지 않기 위해 글로 남기고 싶은 것이다.

논문은 트렌드를 보여주고, 규제기관 문서는 기준을 남긴다. 둘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 아카이브에서는 둘을 함께 볼 생각이다. 논문이 던진 문제를 규제기관 문서가 어떤 언어로 받아들이는지, 반대로 규제기관 문서가 던진 기준을 논문이 어떤 방법론으로 채우고 있는지를 같이 읽어야 흐름이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자꾸 규제기관 문서로 돌아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실무를 바꾸는 문장은 생각보다 논문 discussion의 마지막 문단보다, 가이드라인 본문 속 짧은 한 줄에 더 자주 숨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