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의학, 약학의 연구를 보면 "이제 AI가 다 해줄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건강검진 결과, 병원 EMR, 보험 청구 데이터까지 한데 모으면, AI가 알아서 "누가 언제 어떤 병에 걸릴지" 예측해 줄 것 같은 분위기죠.

헬스케어 데이터를 통해 데이터 분석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저 역시, 이런 기대와 동시에 묘한 불편함을 함께 느낍니다.

"정말로 그 정도면, 왜 아직도 약의 부작용과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 이렇게 머리를 싸매고 있을까?"

이 질문에서 오늘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1. AI가 잘하는 일: "누가 위험한가"를 맞히는 것

AI와 머신러닝은 구분해야 할 용어이지만, 여기서는 큰 맥락에서 편의상 AI로 묶어 보겠습니다. 이 도구가 가장 먼저, 그리고 탁월하게 활용되는 영역은 예측(Prediction)입니다.

  • 30일 이내 재입원 위험 예측
  • 향후 10년 내 골절 위험 점수 산출
  • 당뇨병 환자의 합병증 발생 가능성 예측

이런 문제는 가능한 많은 데이터를 이용해 복잡한 패턴을 찾아내는 모델이 유리합니다. "어떤 사람의 어떤 조합에서 특정한 사건이 자주 발생하더라"를 기가 막히게 포착하죠. 저희 입장에서는 "위험한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미리 알려주는 레이더"로 훌륭하게 쓸 수 있습니다.

2. 하지만 정말로 묻고 싶은 질문은 따로 있다

문제는 실제 현장에서 내려야 하는 결정은 '예측'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의사나 환자가 궁금해하는 건 이런 질문입니다.

  • 이 약을 쓰면, 안 썼을 때보다 골절이 줄어들까?
  • 이 치료 전략이 저 전략보다 생존율을 높여 줄까?

이건 단순히 "누가 골절될 것 같은가?"라는 예측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사람이 어떤 개입(Intervention)을 했을 때,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까?"라는 인과(Causal)의 영역입니다.

통계와 역학에서는 이 차이를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깁니다. 예측은 '지금까지의 패턴'을 통해 흉내 내는 것이라면, 인과는 '현실에서 전략을 바꿨을 때 벌어질 일'을 추정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3. 예측 모델을 인과 모델처럼 쓰면 벌어지는 일

단순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극단적인 예시이지만, 오히려 이런 구조가 현실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기도 합니다.

1. 병원에는 아픈 사람일수록 더 센 약을 씁니다. 2. 아픈 사람일수록 골절이나 뇌졸중 등 부차적인 질병 발생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이 상태에서 AI에게 '약 사용 여부'와 '골절 발생' 데이터만 던져주면 어떻게 될까요? 모델은 아주 높은 확률로 이런 패턴을 학습합니다. "센 약을 쓰는 사람일수록 골절이 잘 생기더라."

이 예측 결과를 단순하게 받아들이면 문제가 됩니다. 사실은 약 때문이 아니라 환자가 원래 더 아팠기 때문인데 말이죠. 이러한 상황을 역학에서는 '적응증에 의한 교란'이라고 합니다.

진짜 RWE 연구에서는 이런 왜곡을 피하기 위해 대조군을 정교하게 구성하고, 시간 축을 조정하고, 민감도 분석을 하며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하지만 단순히 "결과만 잘 맞추면 되는" 예측 모델은 이런 인과 구조를 무시해도 점수가 잘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위험합니다.

4. AI는 엔진, 인과추론은 나침반

그렇다고 해서 제가 AI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AI 찬양론자에 가깝습니다. 다만 헬스케어 데이터 분야에서 이 둘의 역할 분담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AI의 역할: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복잡한 패턴을 찾아내고, 비정형 데이터를 정리하며 "누가 위험한지"를 빠르게 알려주는 역할
  • 인과추론의 역할: "그래서 이 치료를 해야 해, 말아야 해?"라는 질문에 대해, 편향을 제거하고 공정한 비교를 통해 답을 주는 것

최근 연구들은 이 둘을 섞어서 씁니다. AI로 환자 상태를 더 정밀하게 점수화하고, 그 점수를 역학 연구의 설계와 조정에 이용하는 식이죠.

5. 제가 꿈꾸는 AI 활용법

헬스케어 데이터를 다루다 보면, "AI가 우리 일을 다 뺏어 갈까?"라는 걱정보다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AI라는 강력한 엔진을 어떻게 써야, 우리가 고민하는 치료의 효과에 더 정교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

저는 AI는 더 좋은 예측을 위한 도구이고, 인과추론은 올바른 결정을 위한 설계도라고 믿습니다. 예측과 인과의 차이를 분명히 이해하고, AI를 인과추론의 보조 엔진으로 영리하게 활용하는 연구.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AI 활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