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다룬 RMP는 단순한 서류가 아니라, 안전성에 대한 질문 리스트에 가깝습니다. 특히 Potential risk나 Missing information은 "지금은 확실히 모르지만, 그냥 지나치지는 않겠다"는 유럽식 태도를 잘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RMP 안에서 아래처럼 적혀 있으면 실제로는 무엇이 뒤따를까요?
- 이 부분은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 즉 Additional pharmacovigilance가 필요하다
그 다음 단계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PASS(Post-Authorisation Safety Study)입니다. PASS는 말 그대로 시판 후 안전성에 대한 추가 정보를 얻거나, 위해성 완화 조치가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연구입니다.
1. PASS는 무엇인가
PASS를 처음 보면 "허가 후에 하는 안전성 조사" 정도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물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유럽이 PASS를 다루는 방식은 단순 조사보다 조금 더 연구에 가깝습니다.
단순 조사가 "무슨 일이 몇 건 일어났는가"를 기록하는 데 가깝다면, PASS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일이 왜 일어났는가", "누구에게 더 중요한가", "비교했을 때 정말 위험이 높은가"를 묻습니다.
즉 PASS는 허가 후에 자료를 더 모으는 절차이면서도, 동시에 RMP에서 남겨둔 질문을 실제 연구의 형태로 이어가는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 점이 핵심입니다. 유럽은 시판 후 안전성을 사후 보고의 영역에만 두지 않고, 질문이 남아 있으면 그 질문을 연구로 넘깁니다.
2. 왜 유럽은 PASS를 만들었을까
이유는 비교적 분명합니다. 실제 진료 현장은 임상시험보다 훨씬 넓고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임상시험에서는 비교적 선별된 환자가 정해진 조건 안에서 치료를 받습니다. 반면 시판 후에는 더 다양한 연령과 질환 상태의 환자가 약을 쓰고, 더 긴 시간 노출되며, 병용약과 동반질환도 훨씬 복잡해집니다. 어떤 위험은 임상시험 단계에서는 잘 보이지 않다가, 실제 사용 환경에서야 또렷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유럽은 "허가가 났으니 안전성 평가는 끝났다"는 식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허가 이후에야 더 넓은 현실이 열리고, 그 안에서 새로운 질문이 생긴다고 본 것입니다.
PASS는 바로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꽤 유럽적인 방식입니다. 불확실성을 없애버린 척하지 않고, 질문으로 남겨두고, 필요하면 연구로 이어서 관리합니다.
3. PASS의 무대는 왜 리얼월드가 되는가
PASS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많은 경우 비중재적(non-interventional)이라는 점입니다. 즉 연구자가 환자에게 치료를 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진료에서 일어난 일을 관찰하는 구조입니다.
이 말은 곧 PASS의 무대가 통제된 임상시험 환경보다는, 실제 처방과 실제 사용이 벌어지는 리얼월드에 더 가깝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PASS를 읽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시판 후 안전성의 질문이 현실을 향할수록, 답하는 방식도 결국 현실의 데이터를 향하게 되는구나.
물론 여기서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밀어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유럽이 시판 후 안전성을 다루는 방식이 점점 더 실제 사용 환경과 비교 가능한 연구 설계를 중요하게 보는 방향으로 정교해졌다는 점입니다. 즉 중요한 것은 단순히 데이터를 많이 모으는 것이 아니라, 그 데이터를 통해 어떤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입니다.
4. PASS가 보여주는 유럽의 방향
PASS를 보고 있으면, 유럽이 시판 후 안전성을 바라보는 태도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전에는 시판 후 안전성이 "사례를 계속 모으고 이상반응을 보고하는 일"에 더 가까웠다면, 이제는 점점 "남아 있는 질문을 정의하고, 그 질문을 연구로 연결하고, 그 결과를 검토 가능한 형태로 관리하는 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즉 중심이 단순 보고에서 질문으로, 질문에서 설계로, 설계에서 검토 가능한 근거로 옮겨가고 있는 셈입니다.
저는 PASS를 읽을 때마다 이 변화가 꽤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유럽은 시판 후 안전성을 허가 뒤의 부록처럼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허가 이후에야 더 넓은 현실이 시작된다고 보고, 그 현실에서 생기는 질문을 제도 안으로 끌어와 관리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PASS는 단순한 제도 설명 이상으로 읽힙니다. 이것은 결국 글로벌 규제가 점점 더 실제 사용 환경의 근거, 비교 가능한 연구, 투명하게 검토 가능한 분석을 중시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여기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질문을 다뤄보려 합니다.
좋다. 그런데 그런 연구를 정말 믿을 수 있나?
유럽은 PASS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연구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가이드라인과 투명성 장치도 함께 발전시켜 왔습니다. 다음에는 ENCePP와 연구 설계 이야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참고문헌
- European Medicines Agency. Guideline on good pharmacovigilance practices (GVP) Module VIII – Post-authorisation safety studies (Rev 3).
- European Medicines Agency. Post-authorisation safety studies (PASS).
- European Medicines Agency. Guideline on good pharmacovigilance practices (GVP) Module V – Risk management systems (Rev 2).
- European Medicines Agency. GVP Module VIII Addendum I – Requirements and recommendations for submission of information on non-interventional post-authorisation safety studies (Rev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