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아카이브를 떠올렸을 때 출발점은 분명했습니다.
RWE.
실무에서 가장 자주 부딪히는 질문이 그쪽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약의 효과를 관찰자료로 어떻게 볼 것인지, 외부대조군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청구자료와 EHR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규제기관은 무엇을 요구하는지. 가장 즉각적인 문제의식은 언제나 RWE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오래 생각해 보니, 결국 제가 쌓고 싶은 건 RWE 자체보다 그 뒤에 있는 더 넓은 판단 체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RWE는 출발점으로는 좋지만, 목적지로는 좁을 수 있다
RWE는 강한 키워드입니다. 실제 데이터, 실제 환자, 실제 진료현장이라는 말은 늘 강한 설득력을 가집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 질문들 안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느끼는 건, RWE를 제대로 다루려면 결국 더 넓은 언어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 estimand를 명확히 쓰는 법
- comparator를 고르는 기준
- time zero를 정렬하는 감각
- missing data와 misclassification을 해석하는 태도
- transportability와 generalizability를 구분하는 시선
- 규제기관 문서를 연구 질문으로 번역하는 능력
- 예측과 인과를 나눠 보는 기준
즉 출발은 RWE지만, 실제로는 관찰연구 디자인과 통계 방법론, 규제과학, 데이터 해석 전반이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이트 안에 같이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플랫폼 글은 발견되기 좋습니다. 짧게 쓰고 빠르게 발행하기도 좋고,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도달하기도 쉽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계가 드러납니다. 글은 남아도 구조가 잘 남지 않습니다. 예전에 썼던 문제의식과 최근에 생긴 기준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한눈에 보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홈페이지 같은 아카이브는 속도는 느리지만,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글이 서로 연결되고, 카테고리가 생기고, 방법론 문서와 에세이와 리뷰가 한 체계 안에 쌓입니다.
제가 이 사이트를 계속 만들고 손보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글을 올리는 장소가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내 판단의 구조가 드러나는 장소로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다루고 싶은 영역은 더 넓다
지금은 RWE가 중심이지만, 실제로 관심이 향하는 축은 이미 더 넓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주제들입니다.
- 관찰연구 설계 일반
- 인과추론과 target trial emulation
- 규제기관의 RWD/RWE 가이던스
- post-marketing safety와 RMP
- 통계 방법론과 해석의 함정
- 머신러닝을 어디까지 예측 도구로 쓰고, 어디서부터 인과와 분리해야 하는가
- 의료데이터의 생성 맥락과 품질 문제
이 주제들은 표면적으로는 따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 실무에서는 계속 얽혀 있습니다. 하나를 제대로 설명하려면 다른 하나를 끌어와야 합니다. 그래서 아카이브도 처음부터 좁게 잠그기보다는, 점점 넓어질 수 있도록 설계하는 편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쌓고 싶은 것은 글이 아니라 판단의 지도다
이 사이트에 글이 쌓이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사실 더 바라는 것은 글의 개수 자체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기준이 반복해서 드러나는 상태를 만들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글은 comparator를 말하고, 어떤 글은 RMP를 말하고, 어떤 글은 AI와 인과를 구분합니다. 겉으로는 각각 다른 주제 같지만, 결국 모두 같은 질문으로 모입니다.
"좋은 연구는 무엇을 먼저 물어야 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제 나름의 답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지 않고, 하나의 체계로 쌓여 가는 것. 그게 이 사이트를 계속 운영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래서 이 아카이브의 방향은 조금 더 넓어질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RWE는 중요한 축으로 남을 겁니다. 하지만 이 사이트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건 "RWE 사이트"보다 "의학 분석의 판단 체계를 쌓는 아카이브"에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출발점은 RWE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넓은 연구 설계와 해석의 지도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이동 자체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기록해 두고 싶습니다. 지금의 문제의식이 몇 년 뒤 어떤 형태로 확장될지 보는 것도 결국 이 사이트를 운영하는 재미 중 하나일 테니까요.